지월 마음탐사일지2

동학(東學)의 차세대 패러다임에 대한 고찰-글(23)

lampeer 2019. 9. 10. 14:45

동학(東學)의 차세대 패러다임에 대한 고찰-글(23)

 

 指月 이재웅

 

Ⅶ. 결론

동학(東學)은 1860년 수운 최제우가 창시한 종교이자 심학(心學)이다. 동학은 21세기를 넘어서 우리 인류가 만들어 가야할 문명, 지구행성 문명의 차세대 사상적 패러다임이 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동학사상이 가진 현대적인 요소들을 고찰하였다. 이러한 동학을 차세대의 사상적 패러다임으로 정착시키기 위하여 변화하고 노력할 사항들을 살펴보았다.

동학의 우주관은 혼원지일기(渾元之一氣)의 조화(造化)이고 이는 근원적인 긍정으로 이어진다.

우주만상(萬相)이 통합된 원래(unified original)의 한 기운에 의하여 역동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무궁한 창조(creating) 현상이라는 개념이다. 21세기 초엽에서 과학이 밝혀내고 있는 사실은 모든 존재 자체가 근원적으로 현상(phenomenon)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우주 현상으로서의 존재론과 동학의 혼원지일기 조화로서의 우주관은 잘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 현대 과학이 밝혀낸 사실로서 뇌 없는 뇌의 작용, 공간과 시간, 물질의 기본 입자, 우주와 지구행성의 역사를 간결하게 소개하고 동학의 혼원지일기의 조화 개념과 부합하는 점을 지적하였다.

모든 것이 혼원지기의 조화 출현(造化出現)이라는 것을 확실히 통찰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우주 만상에 대한 본질적인 긍정으로 통한다. 이러한 근원적인 긍정(fundamental positiveness)이 깊숙하게 자리 잡으면, 지구행성 위에 출현한 우리 인류의 근원적인 권리와 의무를 자각하게 된다. 지구의 뭇 생명체들과 함께 평화롭게 번영하는 멋진 지구행성 문명, 지상천국(地上天國)을 만들어 가는 것이 인류의 고귀한 권리이자 의무라는 귀결점에 도달한다. 이것은 널리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정신과 상통한다. 우리 민족에게는 익숙한 가르침이다.

동학은 세상만사를 기연(其然)과 불연(不然) 두 측면으로 보고 있다.

기연은 인과(cause and effect)로 이어지며 흐르고 있는 세계이다. 기연을 불교에서는 연기(緣起)라고 한다. 기연(其然)과 연기(緣起)는 동일한 개념이다. 불연(不然)은 인과의 흐름으로는 도저히 더 이상 파악할 수 없는 세계의 측면을 가리킨다. 논리적 추구가 끊길 수밖에 없는 극한 지점, 그 이면의 세계이다. 스스로 그렇다고 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자리이다. 인과(cause and effect)의 세계는 고전물리학(classical physics)이 적용되는 마크로(macro) 세계이다. 마이크로(micro) 세계는 스스로 양자 요동(quantum fluctuation)을 하고 있는 패턴(pattern)이 지배하고 있는 세계이다. 어느덧 현대 물리학은 기연 너머 인과로 헤아리기 어려운 차원의 문턱을 미미하게 엿보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21세기 현대 과학은 인류의 궁극적 물음을 던지고 있다. 우주는 왜 존재하고 있는가? 생명(life)은 무엇인가? 의식(consciousness)은 어디서 오는가? 인류의 궁극적인 물음이 겨냥하고 있는 지점이 바로 불연(不然)의 자리이다. 심학수도(心學修道)의 방법, 과학의 방법 등을 모두 동원하여 불연의 세계를 확연히 뚫어야 인류의 궁극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동학은 무궁무궁 만사지(萬事知)를 바라보고 있다.

우주는 미시세계부터 거시세계까지 정말로 오묘하고 무궁하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은 우리 인류 전체의 앎을 까마득히 넘는 것이다. 진정한 지(知)란 그 현상(phenomenon)이 실제로 일어나는 그것이다. 즉, 우주 모든 존재들의 조화출현(造化出現) 그 자체가 만사지(萬事知)인 것이다. 생명현상의 능동적인 주체로서 모든 생명체들이 각각의 본성대로 정성스럽게 자기실현(自己實現)을 하는 것이 한 생명체가 일생동안 해야 마땅한 영세불망 만사지(永世不亡 萬事知)의 길이다. 이 모든 것들의 무한한 합이 바로 불연기연(不然其然)으로 흐르는 무궁무궁 만사지(無窮無窮 萬事知)가 진행하는 길이다.

-글(24)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