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東學)의 차세대 패러다임에 대한 고찰-글⑳
指月 이재웅(공학박사)
(2) 이루고자 하는 합당한 목적
그리스도교는 예수님을 영접하여 원죄의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며 살다가 결국은 하나님의 천국에 들기를 염원한다. 불교는 바른 수행으로 깨닫고 자비심으로 살다가 결국에는 육도(천, 인, 축생, 아수라, 아귀, 지옥) 윤회에서 벗어나고 극락왕생, 열반 해탈하는 것을 염원한다. 사랑으로 살고 자비심으로 살 것을 제안하는 것은 훌륭하다. 그러나 위와 같은 염원들은 지구행성 세간(世間) 범부들의 삶에 대하여 있는 그 자체로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바로 이곳 지구행성에서 적극적으로 인류의 찬란한 문명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그들 교리의 출발점이 기본적으로 부정적 현세관(現世觀)인 데서 비롯된 것이다. 도교사상은 그 출발점은 동학사상과 같이 근원적인 긍정이다. 그러나 이루고자 하는 목적은 우리들의 적극적인 삶과 떨어져 있고 진취적이지 못한 측면을 보인다. 도교는 무용지물(無用之物)의 유리함을 보는 지혜를 말한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더 유용한 객체가 되려고 노력하는 지혜가 우리 생명체들의 타고난 본성에 더 잘 부합된다. 그리고 사회 공동체 전체로 볼 때에도 각자가 더 유용한 객체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동학사상은 바른 삶과 수행으로 인간들 스스로가 자신을 개혁하여 변화시킬 것을 가르친다.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바로 이곳 지구행성 위에 우리 인류의 조화롭고 찬란한 문명을 건설하는 것을 뚜렷한 목적으로 꿈꾼다. 인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지구행성에서 서로서로 조화롭게 어울려 사는 멋진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지구행성을 공유하는 인류 이외의 다른 뭇 생명체들과 조화롭게 어울려 사는 문명을 이루고자 한다. 지구 생명체들의 일원으로서 태어났으므로 죽음으로 소멸할 때까지 열심히 지구행성위의 모든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겨냥한다. 동학의 가르침에서는 이 곳이 아닌 저 곳의 천국으로 옮겨감이 목적일 수 없다. 결코 열반 해탈이 삶의 궁극의 목적일 수 없다.
동학사상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은 지구행성위에 태어난 생명체로서 우리 인류가 가져야 할 매우 합당한 목적이라고 생각된다. 그 목적은 현실적이고 진취적이고 개혁적이다. 이러한 목적은 생기를 가지고 더 좋은 변화를 이루려고 끊임없이 스스로 행동하는 생명체들의 본질적인 특성에 자연스럽게 잘 맞는 것이다. 특히 우리 인간 호모사피엔스에게 두드러진 창조적인 특성을 고려해 볼 때 그러한 특성과 잘 맞는다. 또한 함께 살아가는 지구 사회 공동의 윤리도덕 측면에서도 훌륭하다. 그 목적의 현실성과 공존성이 생기 있고 아름답다.
(3) 정확한 평등성과 민주성
동학사상의 정확한 평등성은 경천(敬天), 경인(敬人), 경물(敬物)이라는 문구에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우주만상이 혼원지기의 조화 작용으로서 모두 그 안에 혼원지기를 포함하고 있으며, 근원적으로 모두 똑같이 정성껏 존중할 존재들로 여긴다. 우주 그 자체도 존중하고, 우리 인간도 존중하고, 생명체가 아닌 물질도 역시 존중한다. 물론 지구 행성위의 뭇 생명체들 식물 동물들을 모두 똑같이 존중하는 것은 당연하다. 모든 다양한 존재들에 대하여 있는 그대로의 확고한 당당함을 정확히 각성한 정확한 평등사상이다. 깨달은 성자이든 깨닫지 못한 범부이든 그 상태 그대로 정확히 평등하다. 우수한 사람이든 열등한 사람이든 정확히 평등하다. 인간이든, 원숭이이든, 소이든, 표범이든, 잠자리이든, 메뚜기이든, 장미이든, 민들레이든 모두 그 형태와 그 특성과 그 역할이 달라도 지구 생태계 일원으로서, 더 나아가 우주 생명 객체로서 정확히 평등하다.
이렇게 보편적이고 정확한 평등사상은 지금까지 그 유래를 찾기가 힘들다. 예를 들어서 기독교의 교리에 의하면 동물들은 인간들이 다스리는 대상이며, 인간을 위하여 이용되도록 창조된 존재들로 여긴다. 불교는 동물들을 축생이라고 하여 인간보다 모자라는 업에 의하여 태어난 가엾은 미물로 여긴다. 인간들끼리 넓게 사랑하고자 하는 정신도 훌륭하고 뭇 중생들을 연민과 자비로 보살피고자 하는 정신도 훌륭하다. 그러나 모든 생명체들, 모든 물건들을 정확히 평등하게 존중하고 공경하는 정신이 진정으로 멋지게 느껴진다. 그러한 사회를 그러한 문명을 이루어 가는 것이 멋진 도리라고 생각된다.
동학사상의 민주성을 간단하게 살펴본다. 동학사상의 민주성은 바로 앞에서 설명한 정확한 평등사상을 기초로 한다. 정확히 평등한 민중들이 함께하는 사회는 당연히 민중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인식이 민주성을 줄 수 있다. 프랑스혁명보다 동학혁명이 희망한 민주는 더 민중적인 면이 있다. 물론 프랑스 민주혁명이 인류에게 얼마나 소중한 역사인가는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동학사상은 종교 신학적 측면에서도 참 민주적이다. 우리가 접하고 있는 대부분 종교의 신학체계나 현재 구성조직을 조금만 눈여겨보면 그것이 얼마나 봉건적인 지배 체제의 오랜 유산과 사고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유교의 사상은 동학사상과 비슷하게 우주관이나 인류관이 근원적인 긍정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지구에서 인류의 행복한 삶과 이상적인 사회의 구현에 그 초점이 있다. 천당 극락 열반을 지향하는 것에 비하여 실제적이고 훌륭한 측면이 있다. 그런데도 유교의 사상 역시 봉건적이고 제왕적이다. 이는 그리스도교, 불교, 유교가 형성된 때가 봉건 제왕적 문명의 시대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 당시로서는 개혁적이었던 사상들도 그 처한 시대적 배경을 온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에 비하여 동학사상이 민주적인 것은 그 사상이 태동했던 때가 민중 민주적인 사상들이 세계적으로 여러 곳에서 싹트고 있었던 역사적 시기이다. 그 역사적 흐름 속에서 그것을 깊게 자각하고 개혁적으로 담아낸 결과일 것이다.
-글(21)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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