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mpeer 명상기록

달라이라마 방한 추진, 세계의 평화와 마음의 평화가 둘이 아니다

lampeer 2016. 7. 22. 22:35

달라이라마 방한 추진, 세계의 평화와 마음의 평화가 둘이 아니다

 

중화인민 공화국 에이전시의 지원을 받는 티벳불교의 한 광신적 종파인 shugden 추종자들에 의해 달라이라마에 대한 조직적 비판이 30여 년간 이어져 왔다고 한다. 유럽인들까지 포함된 동조자들이 달라이라마의 동선을 따라 다니며 거짓말하지 말라는 구호를 주문 외듯 외친다.

세계를 순방하며 달라이라마는 미 의회 등 정치가들과의 만남도 서슴지 않으니 평화를 이야기하는 정치가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달라이라마의 방점은 어디까지나 평화에 있다. 평화를 위해서라면 누구와의 만남도 거부하지 않는다.

 

중국의 탄압으로 조국을 잃은 식민지 백성으로서, 망명정부의 수장으로서 평화는 평생 그 자신의 화두이기도 했다. 그의 세계가 한 시민(universal citizen)’이라는 평화 의식은 티벳 국민과 문화에 대한 그의 애정이 자연스레 확장된 결과일 것이다. 개인의 자유와 평화가 보장돼야 하듯 세계에서 아무리 작은 나라라 하더라도 그의 자주성과 평화는 보장돼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가 2차 세계대전의 주범이었던 일본을 40여 차례나 방문하여 일본의 젊은 세대에게 평화를 굳이 역설하는 것도 그의 세계 평화 행보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종교가 무엇인가? 수행을 통해 마음을 알고, 법계, 세계를 이해하고, 평화와 행복을 획득하는 일이 아닌가.

 

달라이라마의 행보는 세계평화의 시야에서 다루지 않는 것이 없다. 깨달음과 행복에 대해 말할 뿐만 아니라, 양자물리학 신경과학 등 과학자들과 학회 형태의 토론회를 개최하고, 천문학자 칼 사강과 생각의 방법에 대해 대담하고 세계의 지성들과 보편적 진리가 불교와 다르지 않음을 공유한다.

 

지난 해, 달라이라마를 따르는 한국의 스님과 재가자들이 달라이라마의 방한 추진을 시작했다. 공식적인 홍보영상과 달라이라마 방한 성사를 위한 지역별 발대식도 있다. 방한준비위가 아니라 방한추진 준비위라고 한다. 경제와 국익을 앞세워 중국의 눈치를 보는 한국정부에 목소리를 내는 측면과 세계적 영적지도자인 달라이라마의 방한을 계기로, 정체성의 약화와 그로 인해 길을 잃고 세속 집단화의 길로 치닫고 있는 한국 조계종의 한계성을 뛰어 넘어 한국 불교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겠다는 각성된 이들의 간절한 염원이 작용한 결과라 하겠다.

 

현장법사, 진제스님 등에 의해 중국에 형성된 교학불교가 번잡해지자, 6세기에 인도승 달마의 도래를 계기로, 중국불교는 禪宗(선종)이라는 심자각(心自覺)의 선불교(禪佛敎)를 출범시켰다. 내적 인간성의 발견을 기록한 수많은 선어록을 탄생시켰지만, 9세기 이후 문자선(文字禪) 논란과 더불어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 그 선불교의 정신과 자산을 고스란히 계승했다고 자부해 온 한국 선불교가 21세기 들어 부쩍 말종(末宗)의 징조를 보인다.

 

 

주체적 업그레이드가 행해지지 않는 개체나 집단은 스스로 소멸의 길로 들게 마련이다. 티벳불교는 지리적 척박성을 역으로 이용하여 인도 나란다학파의 심오한 불교의 사유를 순전히 계승하고, 수행과 연구의 두 바퀴로 계속 업그레이드 해온 자산을 가지고 있다.

한국 불교는 신라시대의 원효와 의상, 9산 선문(九山禪門), 고려의 보조, 조선의 함허와 서산, 한암 등 근대의 선승들로 이어지는 생생한 선정신의 계보가 있었지만, 오늘날 한국 선종(禪宗)은 전통문화 유산 수준에서 길을 잃고, 뚜렷한 정신적 지도자도 없이, 세간의 걱정거리에 이르게 되었다.

고속성장 프레임으로 物神(물신)의 우상화가 가속화한 나라,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분단국가인 한국을 식민지 국가에서 탄생한 세계적 영적 지도자 달라이라마가 방문하여 마음의 평화와 세계의 평화를 이야기할 때, 보리달마의 중국 방문에 버금가는 21세기 달마의 한국 방문이라는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달마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중국에 ()의 황금시대가 열렸듯이, 달라이라마의 한국 방문으로 평화와 이성, 합리, 과학 등 리얼리티에 입각해 수행하고 연구하는 새로운 불교의 풍토가 진작되길 염원한다. 달라이라마 자체가 깨어 있는 정신으로 티벳불교, 세계불교를 새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더하여 세계평화의 차원에서 3.1운동을 제창했던 한국이, 현대에도 진정 평화를 생각하는 나라인지 세계가 알게 될 것이다.

 

세계는 한 송이 꽃(世界一華)’을 들어 보인 숭산스님, 세계시민임을 자각하라고 단순 소박 명쾌 유머, 때론 슬픔으로 청중을 깨우치는 달라이라마, 평화운동가 틱낫한스님,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프란치스코 교종들이 한결같이 연설하는 것이 인류정신의 자각과 관점의 차원 이동에 의한 세계평화인 것이다. 세계 평화와 마음의 평화는 둘이 아니다. 그들이야말로 평화의 사도들, 보살들이다. 세계의 밭에 평화를 심는 농부들이다.

그래서 달라이라마의 방한을 환영한다.

lampeer (2015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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