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의 요지
요가와 힌두교에서 삼매는 초월상태에서 신성과의 합일을 뜻한다. 불교에서 삼매는 열반 해탈로 나타난다. 불교는 심오한 철학에도 불구하고 결국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에 입각한 멸도(滅道) 무자성공(無自性空)에 의한 평안 열반 해탈 지향의 세계관으로 출가와 탈세속의 수동적 체제 순응적 성격과 문화를 형성한 단점이 있다.
마음은 한 순간, 한 번에 한 가지만 생각할 수 있으며, 인간의 뇌의 기능 중 제어력이 강한 합리적인 이성적 기능과 제어가 쉽지 않은 감성적 기능들을 다루려면 그침(止)과 관찰(觀)이 동시에 작동해야 온전한 평정에서 진짜 사려가 가능함을 일찍이 요가수행자들은 ‘고요한 사려(靜慮)’로 간파한 듯하다. 요가에서의 문제점은 몸이나 몸에 대한 인식을 제거해서 마음의 의식의 본질에 도달하려는 것이다. 마음에 집중함으로써 자연스레 몸에 대한 인식을 잊는 것이 맞다. 몸을 잊고 마음에 집중할 뿐 실제로 몸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몸 사라짐에 치중한 나머지 나체족이나 몸에 재를 뿌리는 등의 고행주의의 부작용을 나았다.
오늘날 명상수행을 하는 이들은 현대인에게 그다지 실용적이지 않은 좌법과, 유용하지만 본질은 아닌 복식호흡 자체에 집중하느라 진짜 고요한 사려라는 명상주제보다 하나의 방편인 좌법과 호흡법이 명상(冥想)인줄 아는 이마저 생겨나게 되었다.
집중과 깊은 관찰이 명상이지 좌법과 호흡법 자체가 명상의 본질은 아니다. 램브란트의 <명상하는 철학자>(1632년),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참회하는 막달레나> 등 명상 자세의 서양화들이 전하지만 좌법은 찾아볼 수 없다. 좌법은 다만 시대 환경의 산물일 뿐이다. 신라시대 석굴암의 부처상이 좌식과 입식의 혼합형인 것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 거듭 강조하자면, 명상의 요지는 집중과 관찰이지 좌법과 호흡이 아니다.
lampeer(2019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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