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東學)의 차세대 패러다임에 대한 고찰-글 ⑪
指月 이재웅
3. 조화정(造化定)
(1) 창조자들인 생명 객체들과 조화정
물질은 어떤 조건하에서도 정확히 물리법칙을 따라서 그대로 반응을 한다. 물질은 생명체의 몸 안에 있을 때도 어김없이 물리법칙을 따른다. 그러나 생명체는 어떤 주어진 조건하에서 정확하게 법칙을 따라서 반응을 하지 않는다. 물질은 수동적으로 반응하고 생명체는 능동적으로 반응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물질과 구별되는 생명체의 가장 뚜렷한 특징을 생명체의 자유의지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으로부터 생명체는 우주에서 물질과 다른 역할을 하게 된다. 주어진 주위와 상호작용을 하며 자신과 주위를 능동적으로 변화시켜 간다. 모든 것들이 서로 얽힌 속에서 생명 객체들은 상호작용을 하면서 끊임없이 스스로 변화하며 새로운 정보들을 창출한다. 그들의 생명활동을 통하여 새로운 정보들이 계속 창조된다. 실존의 상태를 직접적으로 변화시키는 존재들이자 변화 받는 존재들이다.20) 그러므로 생명체가 살아 활동함에 있어서 조화(造化 creating)를 바르게 정착(定 settling)하는 것이 아주 핵심적이다. 즉 조화정(造化定)을 이루는 것이 지극히 바람직한 것이다.
造化者는 無爲而化也요 定者는 合其德定其心也요21)
(2) 생명 객체의 자기실현과 자리이타(自利利他)
생명 객체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 것이 합당한 것인가? 조화정을 이루는 삶은 어떤 것인가?
모든 생명 객체들은 삶을 통하여 각자의 특성대로 자기를 실현하는 것이 본원적인 권리이고 또 의무일 것이다. 생태계 속에서 수많은 생명 객체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지라도, 각 생명 객체는 근본적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태어난 것이다. 우리 집 강아지가 옆집 강아지의 삶을 위하여 태어났겠는가? 자명하게 아니다. 우리 동네 은행나무가 옆 동네 은행나무를 위하여 태어났겠는가? 자명하게 아니다. 생명 객체는 발현하는 순간부터 각 객체의 자아의식을 가지고 생명 활동을 한다. 자아의식의 가장 원초적인 정의는 객체의 자기 유지 본능일 것이다. 그러한 원초적인 의미에서는 미생물 박테리아도, 식물들도 뚜렷하게 자아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단지 그 형태가 우리 인간의 자아의식과 다른 것일 뿐이다.22)
우주에서 어떤 생명 객체가 태어난 유일한 목적은 생명체로서 자기의 실현일 것이다. 생명 객체의 본질적인 권리와 의무가 생명체의 자기실현이라는 것은 매우 합리적이다. 즉, 자기실현(自己實現)이 삶의 제 일 원칙이다.
그런데 생명 객체들이 자아의식을 가지고 삶을 실현하다 보면 갈등과 부딪힘이 생긴다. 생명 객체들이 각자의 특성대로 자기의 영역을 확보하고 확장하며 활동하는 과정에서 서로 모순되는 충돌의 상황이 발생한다. 이러한 충돌은 다른 종의 객체들 사이에도 일어나고 같은 종의 객체들 사이에서도 일어난다. 단재 신채호는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의 기록이다.'라고 하였다. 인간의 그룹, 민족, 국가 간의 상호작용과 역사의 흐름에 대한 통찰이다. 이 말은 인간의 삶과 상호작용과 역사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뭇 생명체들의 삶과 상호작용과 역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러면 아와 비아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시간 속의 어떤 시점에서 생명 개체인 나라는 존재와 같은 목표를 가지고 함께 행동하는 그룹을 아(我)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비아란 아와 다른 목표를 가지고 행동하는 이유로 아와 갈등관계에 있는 그룹으로 정의된다. 아와 비아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시간 속에서 상황이 전개되어 감에 따라서 유동적으로 변하여 간다. 몇 가지 예를 들면 그 뜻이 선명해진다.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지배 하에서 그 식민지 상황을 종식시키려고 행동하는 모든 그룹과 지속시키려고 행동하는 모든 그룹은 아와 비아의 갈등관계이다. 해방이후 공간에서 정부를 수립하는 상황에 있어서는 남북 단일정부를 수립하려고 행동하는 그룹과 남쪽 정부, 북쪽 정부를 단독으로 설립하려고 행동하는 그룹은 아와 비아의 갈등관계이다. 최근에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참사인 세월호 사건에서 진실을 밝히려는 그룹과 진실을 덮으려는 그룹은 아와 비아의 갈등관계이다. 이렇게 아와 비아를 정의하고 나면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이러한 갈등과 충돌의 상황에서 생명 개체로서 우리가 지켜야할 도리는 무엇인가? 그 답은 간단명료하다. 내가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않는 것이다. 내가 함부로 죽기 싫으므로 남을 함부로 죽이지 않는 것이 도리이다. 나의 삶이 부당하게 방해를 받기 싫으므로 남의 삶을 부당하게 방해하지 않는 것이 도리이다. 내가 이롭기를 바람으로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도리이다. 즉, 자리이타(自利利他)가 삶의 제 이 원칙이다.
(3) 역사를 굴리는 민중들의 풍운조화
인류의 역사라는 것은 몇몇 극소수의 성인들에 의하여 만들어져 가는 것이 아니고 수많은 민중들의 역동적인 갈등과 투쟁의 결과로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드물게 성현들이 출현하여 긴 세월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실제로 한 시대 한 시대의 흐름은 많은 민중들이 어떤 생각에 쏠리고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달려있다. 민중들이 일으키는 풍운조화가 역사를 굴려 간다. 우리 민중 범인(凡人)들이 마음이 일어나서 부당함에 맞서 시비하고 고치려 애쓰고, 변화시키려 희생함이 참으로 고귀함을 본다. 범인들의 그러한 이념과 행동들이 모여서 사회와 역사가 진전하고 있다. 그 덕분에 지금 우리가 이만큼 살고 있는 것이다. 1789년 위대한 이상으로 사회를 변혁시키려 외치며 고귀하게 희생한 프랑스 젊은이들 덕분에 이만큼 더 평등해진 세상에 살고 있다. 1894년 사람이 진정으로 사람다운 사회를 만들려고 외치며 고귀하게 희생한 동학 민중들이 있었기에 이만큼 더 바른 삶의 길을 찾고 있다.
그러니 우리 범인들 각자가 자기의 성향에 알맞게 닦고 자기의 성향에 알맞게 열심히 살아서 자신에게 이롭고 동시에 인류와 뭇 생명체들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이익이 된다면 보람될 것이다. 지구행성에서 태어난 무수한 생명체의 일원으로서 열심히 자기를 실현하고 지구행성 위에 멋진 신세계를 만들어 가는데 보탬이 되면 그것으로 족할 것이다.23), 24)
조화정(造化定)의 삶이란 생명체로서 자기실현(自己實現), 자리이타(自利利他), 널리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삶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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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이재웅,『묘하고 묘합니다 어느 이공학자의 구도보고서 1』, 마인드랩, 2015, 103-111쪽.
21) 『천도교경전』, 「東經大全 論學文」, 천도교중앙총부출판부, 2016, 34-35쪽.
22) 이재웅,『묘하고 묘합니다 어느 이공학자의 구도보고서 1』, 마인드랩, 2015, 107-109쪽.
23) 이재웅,『신인간』806호,「선명하고 정확한 무체법경無體法經의 흥겨움」, ㈜신인간사, 2018, 67-68쪽.
24) 이것은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에게 내려오고 있는 높고 넓은 가르침, 널리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의 가르침과 상통한다. 그렇게 각자가 홍익인간(弘益人間) 지상신선(地上神仙)지상천국(地上天國) 건설의 소망을 품고 자기의 분수대로 노력을 해가는 것이 마땅한 길로 여겨진다.
--글⑫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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