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명상
명상 중의 기억은 자신의 상황을 인식하고 이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대부분의 기억은 마음의 의식과 잠재의식, 무의식이 현재의 관점에서 재조합되어 의식에 의해 포착되어 퍼 올려진 것이다. 현재의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요청에 의해 불려내어진 기억이라고 할까?
도서관의 책들은 선반에 놓여 있다가 열람자의 요청에 의해 불려 내어지고 열람자의 필요에 따라 여기저기 픽업되고 새로 조합된다.
기억은 기억의 선반 어딘가 놓여 있다가 기억하는 자의 필요에 의해 불려내어 지는가? 그 많은 기억이 어떻게 다 유의미(有意味)의 형태로 기억의 선반에 고스란히 놓여지며, 당시의 모습 그대로 기억이 가능하겠는가? 필자와 대화한 생명과학 박사는, 기억이 사실적으로 그대로 저장되는 부분도 있겠지만, 장기기억일수록 특성별로 분류되어 있다가 현재 환기하는 자의 관점에서 재조합되어 불려내 진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라는데 동의한다. 같은 사건이나 영화를 보고도 사람에 따라 환기하는 내용들에 대한 기억도 해석도 다른 것에서, 동일한 정보를 대하는 인식자의 특성에 따라 사건을 보는 인식과 그 정보의 내용도 다르게 저장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저장된 정보는 동일 정보조차도 환기자의 현재 지적 감성적 복합적 심리 상태에 따라 다르게 환기되기 쉽다.
따라서 유전적 성격이든, 성장환경 요인이든, 기왕에 형성된 심리특성에 더하여, 현재의 심리상태와 기억의 연관성은 심대하다.
이것은 의식과 의지의 개입 정도와도 관련이 깊다. 우리가 주관과 객관을 말하지만 주관과 객관의 경계를 나누는 것도 엄밀하기가 쉽지 않다. 마음을 연구하는 뇌과학자들이 시냅스 연결 등의 물리화학적 ‘신경’에 집중하고, 물리학자들 중에도 양자역학의 제로(0) 베이스에 기반해서 부단한 생성과 소멸이 이뤄지는 ‘역설’에 집중하며, 마음의 의식을 연구하는 것은 마음의 작동 메카니즘을 객관적 데이터베이스에 기반해서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이며, 뇌 관련 장애, 기억 등의 연구는 매우 중요한 요소인 듯하다.
특정 파장의 빛 자극을 주어 세포들 간의 연결을 강화하여 알츠하이머 쥐들의 기억장애를 일부 되살려내는 실험에 성공한 사례도 알려진 바 있다. 생명체는 절연체가 아니라 자연적으로 전기력, 자기장을 가진 존재다. 이를 이용해 MRI, CT, EEG스캔이나 두뇌에 밝은 빛을 쪼이는 광유전학 등이 실제 인간의 질병 치료 과정에 사용되고 있다.
그러니 인간이 명상을 통해 자기의 뇌에 자극을 주어 일정기억을 떠 올릴 수도 있지 않을까? 스스로 뇌에 자극을 주어 뇌를 활성화 하여 많은 문제를 통찰할 수도 있지 않을까?
명상자는 명상 상태에서 마음을 빛의 영상으로 보기도 한다. 명상의 상태를 가리키는 표지(남방불교말로는 ‘니미따’)들이 빛으로, 흰 연기로, 색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것은 신기한 현상이 아니라 현재 마음 상태를 나타내는 정보를 뇌가 그려 보인 것뿐이다. 꿈에서 영상을 보는 것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진희 카이스트교수는 ‘기억은 개념적으로 학습과 경험의 결과로 생긴 신경생물학적 표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사이언스온)라고 하였다. Guiliana Mazzoni박사는 ‘무한한 기억(A memory without limits)’(TED)에서 ‘기억(memory)은 환망(illusion)이며, 재건축(reconstruction)된 것’이라 하였다. <금강경>은 ‘모든 지어지는 것은 꿈과 같고 바다의 거품과 같다.(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라고까지 말한다. 주관과 객관, 실제와 망상의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드러난 모든 기억을 모두 꿈이라 해도, 모두 실제라 해도 맞지 않다. 어디까지가 실재(reality)이고 어디까지가 환망인가? 분명한 것은, 잠들어 있을 때도 몸이 죽은 것이 아니듯, 생명체의 마음은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현재 살아있는 현상적 실재로서 부단히 작동하고 있다는 점, 심지어 잠들어 있을 때조차도 생물학에서 말하는 내정상태회로에서 정보를 정리하며 작동하고 있다는 점, 무엇보다 기억해내는 자의 삶의 현장에 어떤 식으로든 작용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현재, 실제(實際)를 직시하는 통찰과 직관의 힘이 중요하다.
마음의 심층을 밝히는데 최면과 명상이 유사하다는 최면전문가의 진술도 있다. 다만 최면술이 타발(他發)적 유도의 과정을 거친다면 명상은 자발(自發)적인 특징이 있다. 무의식 잠재의식을 기억해내는 동기도, 관찰 태도도, 자발적 의지의 산물이기 때문에 광범한 문제 해결의 효과가 있다. 종교적 힐링으로서의 명상을 넘어, 명상 중의 기억이나 심상 등을 현재의 자신과 세계를 깊이 이해하는 마음탐사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인류는 또 다른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lampeer(20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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