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無常)한 실상(實相)의 역동적 자유 생기
지월 이재웅(공학박사)
‘제행무상(諸行無常)! 모든 존재 현상은 항상성이 없고 변하여 간다.’
매우 정확 정직하고 실효성이 있는 석가모니 성인의 가르침입니다. 모든 것은 무상(無常, 항상성이 없음)하니 탐욕에 의한 집착으로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무상의 대원칙을 잘 파악하고 집착을 내려놓고 조화롭게 살아라. 매우 간결하고 실효성이 있는 가르침입니다.
저는 명상 시 <새끼 거미>에서, ‘지구행성 위에서 생멸하는 모든 생명 가진 존재들이 모두 똑 같을 것입니다. 모두 깊이 경이롭고 모두 깊이 무상(無常)합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깊이 무상(無常)하다고 한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 차원에서 차분히 살피고 파악해 보아도 모든 실재하는 것은 인연연기(因緣緣起)에 따라서 찰나 찰나 상태가 변하고 있습니다. 무상(無常), 즉 항상성이 없이 오로지 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를 포함한 생멸하는 모든 것이 긍정적으로 담담하고 평화롭게 받아 들일 수 있는 정확한 진리이고 실상입니다.
아래에서는 ‘깊이’라는 수식어를 무상 앞에 붙인 이유와 무상(無常)한 실상으로부터 얻는 역동적 생기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무상(無常)을 파악하고 실제로 검증할 수 있는 단계, 차원은 다양합니다. 우주, 은하계들, 한 은하계 안 별들의 차원, 지구 위 모든 존재, 모든 생명체의 차원, 모든 다양한 생명체들의 그룹 사회의 차원, 한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약 70조 세포들의 차원, 각 세포들의 그룹화된 조직의 차원과 각각 단일 세포 안의 차원, 인간 머릿속 뇌를 이루는 수 많은 뉴런(neuron) 집단의 끝없이 변하고 있는 결합 패턴과 정보 교환 차원, 모든 물질적 구조물들을 이루는 화학 분자들이나 원자의 차원, 새로운 경이로운 실존의 패러다임을 열어 보이고 있는 아원자(亞原子, subatomic) 차원 등등……
각 차원에 따라서 변화하는 무상(無常)의 형태와 시간 공간의 스케일이 아주 다릅니다. 그러나 아원자 차원이라고 해서 단순히 작은 것이 아닙니다. 아원자 차원이 전 우주적 차원에 펼쳐져 있으니까요. 작은 차원이라기보다는 다른 차원이라는 말이 더 적합할 듯 합니다.
어쨌든 인류의 인지, 특히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과학이 발전해 가면서 인류가 실존과 무상을 파악하는 형태가 다양하고 깊어지고 있습니다. 어디를 들여다 보아도 경이롭기 그지 없고 무상한 여러 존재 차원들입니다.
한 예를 들겠습니다.
20세기 약 100년 동안 발전한 양자물리학을 통하여 알아차리고 실제로 검증한 아원자 차원에서의 무상(無常)의 실상은 참으로 오묘하고 역동적입니다. 관찰자와 관계없이 물리적 존재가 객관적으로 주어져 있다는 것이 19세기까지의 고전 물리학이 제시하고 검증한 것입니다. 그러나 20세기 양자물리학은 주객(主客)을 나눌 수 없는 물리적 실존의 모습을 검증해 내고 있습니다.
‘어떠한 객체의 상태도 관찰 전에는 정해져 있지 않다. 모든 가능성(probability)을 내포한 정해지지 않은 부정(不定)의 상태에서 관찰자가 관찰하는 순간에 그 관찰에 의하여 관찰되는 객체의 물리적 존재의 상태가 정해진다.’라는 것이 양자물리학이 밝힌 사실입니다. 단순히 ‘객체의 상태는 이미 정해져 있는데 관찰하기 전에는 단지 그 상태를 모를 뿐인 것이다.’ 하고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일상 생활의 경험에서도 흔히 말할 수 있는 서로서로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친다는 수준이 아닙니다. 주객을 전혀 분리할 수 없는 물리적 실존의 모습, 그 실상의 패러다임을 모델링 했고 그것이 실제로 실험을 통하여 증명되었습니다.
즉 우리 모두가 주객(主客) 하나의 덩어리로 얽히어서(인드라망), 찰나 찰나 실존의 상태를 직접적으로 변화시키는 자이자 변화 받는 자입니다. 이 얼마나 깊고 역동적인 무상(無常)의 실상(實相)입니까!
우리가 우주 전체가 아니고 우주의 부분 집합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매우 능동적인 부분 집합인 셈입니다. 좀 멋스럽게 말을 하자면 우리는 동시에 창조자들이자 창조된 자들(simultaneously creating ones and being created ones)로서 우주 전체집합(total set) 속의 작은 부분집합(partial set)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힘이 솟고 멋있습니까!
제가 ‘깊이’라는 수식어를 무상 앞에 붙였던 이유입니다. 앞으로 생명과학과 마음과학 등등이 급격히 발달해가면서 21세기에는 인류가 어떤 차원의 실존과 무상(無常)의 형태를 밝혀나가고, 어떤 경이로운 세계로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인식 패러다임을 열어 갈지 참으로 기대가 됩니다.
불현듯 제가 청년기부터 늘 되뇌어 온 말이 생각납니다.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이 중요하다. 보편적이고 객관적으로 확실하게 이해하거나, 경험하고 나면 믿으려고 기도를 하거나 애를 쓰지 않는다. 지구상의 현재 인류 중에서 누가 아침에 동쪽에서 해 뜨는 것을 믿어 보려고 매일 기도를 하는가? 누가 절벽에서 발을 헛디디면 떨어지는 것을 믿어 보려고 기도를 하는가? 믿기 위하여 기도를 하지 않고도 당연히 믿을 수 있는 것이 진짜 믿음이다.’
저는 제가 경험하고 관찰하고 배워서 파악해 온 모든 것에 의하여 깊이 무상(無常)한 실상을 받아들이고 신뢰하고 있습니다. 무상(無常)한 실상에 대한 담담한 긍정과 신뢰로부터 평화로움이 다가오고 매우 역동적이고 자유로운 생기가 솟아남을 봅니다.
(2013. 11. 3)
지월 이재웅 '어느 이공학자의 구도 보고서 1 <묘하고 묘합니다> 마인드랩 2015 pp.4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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