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월 마음 탐사일지1

훌륭함과 위대함

lampeer 2016. 8. 16. 10:31

훌륭함과 위대함

 

봉사 박애 - 인간 보존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

깨달음 - 인간 확장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

위의 두 가지는 상호 보완적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점에서 훌륭한 것과 위대한 것의 차이가 생김도 사실입니다. 모든 고등 종교적 정신은 훌륭합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모두 사랑과 평화의 황금률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중 유독 하나의 정신, 불교적 정신, 즉 진정한 의미의 구도적 정신이 스스로 위대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나머지 정신들은 아가페적 심원한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의 밑에 깔린 심원한 본질인 이란 지지대가 필요하지만, 불교적 정신은 같은 심원한 사랑을 위해 어떤 지지대도 필요 없이 존재 그 자체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존재! 여기서 바로 훌륭함과 구별되는 위대함을 지니게 됩니다. 한 객체가 훌륭한 정신, 즉 사랑을 견지하기 위해서는 심원한 신비에 대한 더 할 수 없는 겸허함과 신뢰, 그리고 충만한 축복감과 순응함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나 한 객체가 무한의 미망 속에서 진정 스스로 서는 위대한 정신을 견지하기 위해서는 겸허함, 신뢰, 축복감, 순응함, 공허함 등 그 모든 것의 근원적 실허(實虛)를 냉랭히 꿰뚫은 후에만 얻을 수 있는 현존의 진면목에 대한 직관이 필요합니다. 그 직관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지만 그것을 얻어 낼 때까지 전진하는 정신은 꽤나 드뭅니다. 진정 염화시중의 미소의 문턱을 넘어서기 전에는 절대로 위대함을 지닐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훌륭함을 지닐지라도.

그리고 또 하나의 당연한 소리를 노파심으로 부언하자면 위대함 속에는 자연스럽게 훌륭함이 깃든다는 것입니다. 현존의 진면목의 물러나지지 않음을 꿰뚫어 보고 있는데 어찌 심원한 사랑이 깃들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 사랑은 어떤 지지대도 필요로 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것으로부터 기인하는 사랑은 색채도 열기도 수반하지 않는, 조금의 무리도 초래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지 않은 투명한 것입니다.

(1985. 7. 28) 

 

지월  이재웅 <묘하고 묘합니다 어느 이공학자의 구도 보고서1>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