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마음탐사 명상과학
20세기 서구 히피즘이 새로운 출구 모색에서 동양 신비주의의 명상 바람으로 나타났다면, 21세기는 그 부작용에 대한 반성과 동서양 종교의 시대적 한계점에 대한 성찰, 서구 정신의학과 신경과학의 실험을 거쳐 실제 유용성의 측면에서 명상을 받아 들이고 있다. 20세기에 달라이라마, 틱낫한 등이 서구사회에 널리 알려졌고, 종교간 교류도 활발해지면서 유럽의 수도원들은 그들 전통의 수도법과 함께 동양의 명상을 종교 차원이 아닌, ‘인류의 정신문명, 마음치유, 도야’의 측면에서 도입하는 사례들이 생겨 났다. 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가 2018년도에 유럽의 명상 센터 를 탐방한 내용을 축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대부분의 명상 선 센터들이 초교파적 형태를 취했으며, 경영난에 봉착한 가톨릭 수도원은 티베트 불교나 일본 선불교의 명상법을 도입해 각기 다른 신앙과 수행을 공존시켰다. 노르트 발트 젠도는 초교파 명상센터다. 종교와 관계없이 사람들이 선(禪) 하러 온다. 독일의 벨텐부르크 수도원에서 수도원 운영을 위해 호텔을 경영 중인 수사들은 수도와 생활의 괴리에서 오는 심적 갈등이 심했으며, 수도원 자구책으로 1977년 '명상의 집'을 설립하고 영적 지도자 롤프 플레이터(Rolf Fleiter)의 지도하에 선 센터를 운영 중이다. 6명의 수사들은 수도원과 농장을 관리하며 반농 반선 (半農半禪)의 생활 종교를 실천하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교의 위기는 진행 중이며, 새로운 모색의 중심에 마음 성찰, 관찰의 명상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유럽의 순례자의 길의 테마가 구도가 아닌 ‘나를 찾아서’로 바뀐 것도 그러한 변화의 하나이다.
한편, 존 설(John Searle)의 의식(consciousness)의 생물학적 자연주의,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의 ‘감정 정서 (emotion)는 생화학적 과정(biochemical process)’이라는 설명, 에릭 캔델(Eric Kandel)의 기억의 처리 과정(process)에 관한 생명 과학의 성과들은 21세기 들어 인류가 마음을 과학의 영역에서 다룰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이러한 마음과학의 성과들은 전통의 요가나 명상들이 더 이상 신비주의나 종교적 신념의 차원에 머물 수 없으며, 인류의 인지 발달을 따라 과학적 탐구의 과정을 거쳐 인류에게 보다 유용한 도구로 전환되어야 함을 요구하고 있다.
‘860억 개의 뇌세포와 100조 개의 시냅스 연결 회로가 작동하는 정교한 뇌의 시스템이 마음이며, 인간이 내리는 결정 중 상당수는 의식에 의해 내려지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 수준에서 일어나는 자동적 과정의 결과’라는 신경과학자 한나 크리츨로우 (Hannah Critchlow)의 연구 보고는 마음의 심층에 대한 이해를 촉구하고 있다. 또한, ‘식욕의 후성 유전학에서, 제2 차 세계대전 중에 기아 환경에서 탄생한 네덜란드 아기들이 성장 후 고혈압 당뇨 확률이 높았다. 이는 불일치 가설(mismatch hypothesis)로 극도의 기아 환경에서 성장한 아기들이 전후 풍족해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까닭이다. 세포들이 똑 같은 유전 암호를 갖고 있음에도 DNA의 조절 스위치가 환경에 따라 바뀌면서 특정 방식으로 행동하게 한다.’고 크리츨로우는 설명한다. 식욕은 선천적이지만, 환경에 의해 유전자가 다르게 발현된 경우이다. 선천적, 운명적 개별 뇌가 환경 집단과 상호작용하며 이뤄내는 창의 진화를 저서 곳곳에서 역설한 것을 볼 수 있다.
생명체는 이처럼 부단한 변화의 도정에 있다. 질문통찰명상은 깊은 명상 중 감지하는 표상, 언어들이 과학자의 깊은 생각실험이나 신경과학의 실험, 인지과학의 표현(representation), 철학, 심리학 등 저마다 표현을 달리할 뿐 자연으로부터 온 인간현상을 탐사하는 도정을 함께 하고 있다는 공감에 이른다. 명상에서 신경회로의 작용이 마음의 작용이라는 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는데 무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명상 중의 현상들을 이해하는데 매우 유용한 설명 도구로 과학의 성과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
질문통찰명상은 합일이나 열반 지향의 전통 명상의 한계에 대한 반성의 도정에서, 현대의 인지과학 마음과학 신경과학들의 성과들을 돌아보고, 과학적 자연주의 리얼리즘을 견지한다. 따라서, 요가나 불교 명상처럼 무상(無常)과 무아(無我)를 관찰해서 공(空)한 경지 해탈이라는 이름의 소멸(消滅)과 멸도(滅道)의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생명현상인 진화의 최신 버전인 대뇌피질을 가진 인류 생명체로서, 생명이란 무엇인가? 마음은 무엇인가? 현상들의 의미는 무엇인가? 세계는 어떻게 된 것인가? 묻고 깊은 명상에 들어 관찰한다. 따라서 명상 중의 현상들을 과학자가 연구하듯 방법론을 세우고 타당성을 평가한 다음, 마음탐사한 내용들의 정보를 기록하고 축적하여 그 내용들이 진리 실제인가? 자연(自然)의 이치에 맞는가? 그 표상의 의미는 무엇인가? 유용한가? 등등을 점검한다.
특히, 칼 융의 분석심리학은 무의식의 표상들의 이해와 해석에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무의식을 ‘의식으로 감지되지 않는 심리적 사건들의 총체’로 보고, ‘잠재의식적 결정인자들 간의 복잡 미묘한 연관 관계에 대한 통찰’을 강조한 점, 꿈의 해석을, ‘프로이트 식의 유년기 퇴행적 본능 추구가 아니라, 잠재의식의 생의 에너지로 보고, 상징 해석을 통해 심리적 가치의 실제 유용성에 이르도록’ 한 점 등은 질문통찰명상 중의 표상들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지침이 되었다.
자신의 관점과 내적 가치를 살피고 명상 성찰의 시간을 보내는 일은 진리를 추구하고 자신과 인류의 미래를 염려하는 21세기 시민 지성들의 덕목이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명상의 추구는 인공지능(AI)과 생체 칩(bio chip) 등 뇌심부 자극 표적 기술, 기계 정보 능력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시대를 맞아, 인간 스스로의 능력을 심화하고 증강할 필요성과도 맞물려 있다.
21세기 들어 문명의 발달과 함께 물리학 화학 생명과학 신경과학 정신의학 인지과학 인공지능 등에서 융합과학으로 생명과학의 시대를 열어가는 것은 인간이 과학의 방법으로 생명, 인간, 의식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실증적인 인간 이해에 들어선 것을 뜻한다. 관련 학문의 발달을 따라 시간 공간 마음의 다양한 차원들이 실증적으로 드러나고, 마음에 대한 획기적인 측정 도구와 정보들이 축적되어 감에 따라, 인류가 생명과학에서 몸을 설명하는 만큼, 마음학(mindology) 마음과학(mind science) 에서 마음을 정교하게 설명할 날을 기대한다. 이는 신경세포와 그 연결들의 복잡계인 창의적인 뇌를 가진 인간이 스스로를 심화하여 뇌 능력의 신장으로 새로운 인류의 진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질문통찰명상은 생명체의 의식에 화답하는 무의식의 유용성을 극대화한다. 신경회로들을 점화해서 마음의 의식 무의식에 새 길을 내서 알아차림의 영역을 확장한다. 이것은 외계에 대한 인식과 자아의식의 간섭이 멈춘 관찰로 정보의 왜곡을 최소화하여, 전체 정보 재생, 마음의 홀로그램을 관찰하는 일이다. 진화론적으로는 38억년간 지구의 생명현상 정보가 기본으로 내장되어 있을 것이다.
질문통찰명상은 마음탐사명상이며, 신경의 메커니즘과 마음의 표상성을 이해하는 일이며, 칼 융의 분석심리학이 그랬던 것처럼 명상, 명상심리를 과학화하는 길이다. 명상과학은 명상이 신비의 영역에 머무르던 것에서 방향을 돌이켜, 사유하고 성찰하는 인간의 특성을 십분 반영하여, 인간의 삶 속에서 보다 유용하고 실제적인 인간 이해에 도달할 것이다. 시대성과 지속성, 합리성과 보편성을 획득하여 자연성과 실제성에 이를 것이다.
'6장. 질문통찰명상의 미래' 유경 <질문통찰명상> 마인드랩 2024 pp.178-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