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님의 등불

쟝그르니에 <섬>

lampeer 2020. 3. 20. 13:58

쟝그르니에 <섬>

 

 그러므로 사람은 자기자신에게서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은 불가능한 일-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하여 여행한다고 할 수 있다. 예수회 신자들이 육체적 단련을, 불교 신자들이 아편을, 화가가 알콜을 사용하듯이, 그럴 경우, 여행은 하나의 수단이 된다. 일단 사용하고 나서 목표에 도달하면 높은 곳에 올라가는 데 썼던 사닥다리를 발로 밀어 버리게 된다.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는 데 성공하고 나면 바다위로 배를 타고 여행할 때의 그 멀미나던 여러 날과 기차속에서의 불면 같은 것은 잊어버린다(자기 자신의 인식이라지만 실은 자기 자신을 초월한 그 무엇인가의 인식일 것이다). 그런데 그 <자기 인식 recon-naissance>이란 반드시 여행의 종착역에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에 있어서는 그 자기 인식이 이루어지고 나면 여행은 이미 끝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통과해 가야하는 저 엄청난 고독들 속에는 어떤 특별히 중요한 장소들과 순간들이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 장소, 그 순간에 우리가 바라본 어떤 고장의 풍경은, 마치 위대한 음악가가 평범한 악기를 탄주하여 그 악기의 위력을 자기 자신에게 문자 그대로 <계시하여> 보이듯이, 우리들 영혼을 뒤흔들어 놓는다.

쟝그르니에 <섬> 김화영 역 민음사 1981 p.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