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가치
행복 가치
일간지에 우리 사회격차를 다룬 한 기고문이 실렸다. ‘자산, 소득의 양극화, 지식, 성격의 양극화’를 지적하며 ‘오늘의 최상층은 외모 학벌 기호 집안 성격 지성 인맥 등 모든 것을 소유한다.’ 고 하고 ‘돈, 영어, 학벌을 지닌 서울 사람들은 평균의 한국인과 정체성을 공유하지 않으며, 국경을 초월한 새로운 신분사회를 형성한다’고 하였다.
조선 시대 최상층은 어땠을까? 고려시대는? 어느 시대나 그 시대가 가진 자산의 최상층을 향유하는 계층은 있었을 것이다. 그들도 ‘외모 학벌 기호 집안 성격 지성 인맥’에서 그리고 돈, 한문, 학벌에서 평균 조선(고려)사람들과 정체성을 공유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가난한 마을에 부자가 한 두 명 살아서 정체성을 공유하지 않는다고 꼭 잘못될 것도 없다. 일단 누구나 자기 방식으로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쨌든 국민 시민으로서 생물학적, 지리적, 역사적 정체성은 어차피 피할 수 없다.
생명체는 산다는 자체가 날마다 해결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위의 요소들을 다 갖췄다고 반드시 심신이 건강하고 행복할까? 여기에 ‘행복’ 요소를 첨가해 보면 어떠할까? 여전히 최상층이 최상층일까? 한국 사회에 정치 경제 사회의 각종 단위, 기업 등에서 상당수 권력층들이 오늘날 존경 신뢰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이룩한 부와 권력 명성이 공정성이라는 페어플레이, 평등의식의 민주주의에서 낮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한 때 높은 지성과 앞선 정신으로 국민적 존경과 신뢰를 받았던 이들이 오늘에 이르러 부도덕과 자기모순으로 씁쓸함을 안겨주는 사례들 또한 적지 않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기업들의 비리, 낙마하는 고위층들의 시대 인식, 조국 사태에 이르기까지 부와 명예를 지속 가능하게 하려면 개인의 높은 식견, 견고한 정신과 높은 도덕성까지 요구되며, 일제 하 간송 전형필이나 현대의 빌게이츠의 사례에서도 보듯 부귀나 명예를 가진 자에게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사회도덕적 책무마저 따르며, 그것을 기꺼이 수행할 때 그것이 행위자 스스로와 공동체에게도 행복가치가 된다는 것을 사회현상으로 보여준다. 더불어 세계는 유엔을 비롯하여 다수의 NGO 단체들이 인류의 행복 증진에 노력하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직간접 참여로 행복감을 얻는다.
다른 통계에 의하면 한국은 11억 이상의 재산을 가진 사람이 80만에 가깝다고 한다. 그 가족이 누리는 혜택까지 생각하면 한국사람 상당수가 자산가인 나라로 가고 있다. 이제 한국 사회는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문제가 아니라 많이 가졌건, 적게 가졌건, 사람이 사람이냐, 사람이 우리 사회를 생명 평화 공정(公正)으로 지속 가능하게 하는 진짜사람이냐를 묻는다.
민주주의와 정보혁명은 뛰어난 개인이 미치는 사회적 영향을 극대화시키면서 동시에 가진 자건 못 가진 자건 자기 성찰이 없으면 진짜 행복하게 살 수는 없는 시대가 되었다.
lampeer(2019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