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mpeer 2019. 10. 9. 00:26

죽음

 

죽음은 크게 사실(fact)적 죽음과 종교적 죽음으로 나눌 수 있다. 사후(死後) 천국 지옥을 그리는 그리스도교나 지옥 극락을 그리는 불교는 선악을 기준으로 죽음의 문제를 바라보되, 불교가 인과응보적 지옥과 극락설, 윤회설을 둔다면, 그리스도교는 신앙을 기준으로 믿는 자의 구원을 둔다. 불교에도 죽음의 순간에 한 생각 선한 의지로 죽음을 맞으면, 자신의 노력에 의한 것이기는 하나, 무거운 쪽으로 기울어 좋은 과보를 받는다는 선불교의 구제 사상이 있어 지옥을 면하는 장치 역시 마련되어 있다. 유교는 귀신이나 사후세계를 일체 인정하지 않는다. 제례는 죽은 조상을 실제 불러 온다기보다는 가계의 유훈이나 봉건적 통치행위와 관련이 깊다. 그래도 제사에 가족들을 모으고 조상을 기억한다는 미덕은 있다.

인간의 죽음이라는 본질적 문제로도, 생존기간의 정서적 이유로도, 종교 비즈니스면에서도, 구원의 사상은 오랜 전통으로 자리잡은 듯하다. 오래된 전통은 다 진리일까? 

사실은 어떠할까? 메뚜기나 여치, 까마귀, 고래가 죽을 때 지옥이나 천국에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가 자연스레 죽는 것이 자연스러운가? 인류 역사상 한명이라도 죽음에서 돌아와 다시 생애를 영위한 사실적, 역사적 기록이 있는가? 임사체험에 등장하는 이들은 왜 대부분 임사체험자가 기억하고 있거나 그와 관련된 인물들인가? 임사(臨死) 체험이라는 것이 현대의학이나 과학으로는 아직 측정 불가능한 생존 상태일 뿐인 것은 아닌가? 인류는 수많은 죽음에도 불구하고 문명과 산업의 발달과 더불어 인구의 폭발적 증가를 가져왔으며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것이 천국, 지옥, 극락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죽음이란 살아있는 물질 즉 생명이 작동하다가 더 이상 원래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현상을 말한다. 여기서 평생 사용한 물질인 몸은 원래 상태로 돌아가지 못하여 죽음에 이르는데, 평생 사용한 정신만 오롯이 살아남아 어딘가 있다가 윤회하거나 천당이나 극락을 간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가? 스위치가 꺼지면 알아차림도 끝난다. 몸의 기능은 완전히 멈췄는데, 마음만이 알아차린다면 몸이 없이도 알아차린다는 뜻인데, 몸이 없이 가능하다면 왜 산 자와 죽은 자가 여느 때처럼 서로 알아차리지 못하는가?

자식이 있다면 자식의 유전자 속에 전해졌고, 사회적 유전자 속에 나의 삶도 전해졌을 것이기 때문에, 굳이 죽어서 사라진다고 해서 나의 요소들이 아예 단절되는 것도 아니다. 설령 정신만 남아서 다른 곳에 태어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다른 형태의 성질을 반영할 뿐이지 형태만 달라지고 성질은 똑 같을 수 없다. 결국 인간도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게 가장 자연스럽다.

지두 크리스나무르티는 ‘무엇이 죽음인가?’에 대하여, ’죽음은 삶의 한 부분으로 정신적 신체적 심리적으로 완전히 죽는 것(complete end)’ 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죽음의 진정한 의미이다. 사실적으로 삶은 살다의 삶이며 죽음은 죽다의 죽음이다. 우리는 삶에서 서서히 죽어가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죽음에 도달하는 것이다. 티벳 족첸 수행에서는, 죽음의 과정을 수행으로 삼는데, 태어날 때 형성되는 오감각의 순서대로 각각 지수화풍미(地水火風味)를 뜻하는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의 오감각이 사라져 가는 것을 보여준다. 먼저 생겨난 것이 순서를 따라 먼저 사라져가는 것이다. 생명현상이 생명체의 감각과 지각으로 인식되는 것이라면 죽음은 개체가 죽음의 과정을 감각하고 지각하는 생명현상의 끝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은 변해간다. 태어난 생명체는 반드시 죽는다. 산다는 것은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죽음의 자리에서 인간은 태어날 때 그랬던 것처럼 비로소 온전히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아기 때 오로지 몸과 키가 자라며 자신의 삶을 살았던 것처럼 오직 자신과 마주하며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펼쳤던 자신을 온전히 거두어 이 세계에서 퇴장하는 것이다. 그것이 소멸 죽음의 진정한 의미이며 산 자들의 생명현상을 빛나게 하는 일이다.

부유한 나라 미국은 ‘매년 3만명이 총기 폭력으로 죽음에 이른다.’ 고 한다. 이는 한 해 인류의 전쟁 사망자 수보다 많다고 한다. WHO(세계 보건기구)에 의하면 ‘전 세계에서 매년 125만명이 교통사고로 사망’ (HUFFPOST)한다고 한다. 인류의 삶과 죽음, 천국과 지옥은 인류 가장 가까이에 있지 종교의 사후 구원에 있지 않다.

lampeer(2019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