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mpeer칼럼

염치와 종교

lampeer 2017. 8. 4. 22:52

염치와 종교

 

서소문 공원의 천주교 성지 조성안은 2011 7월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 정부에 청원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정부는 518억원의 예산을 들여 지상에순교성지, 지하에순교성당을 조성하고 한국 천주교 유물 기념전시관을 조성하여 서소문공원을세계적 천주교 순교성지로 만들어관광자원화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추진해 왔다고 한다. 서소문에는 이미 1984년에 세운 천주교 순교자 현양탑이 서 있다.

현재 구의회가 관련 예산을 통과 시키지 않고 있는데, 2017년도 8월 들어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11명이 구의회를 방문하여 천주교 신자 159,000명의 사업 추진 촉구 서명을 제출했다고 한다.

서소문 천주교 성지 조성을 반대하는 서대문 역사공원 바로 세우기 범국민대책위서소문 공원은 천주교 순교자 현양탑만이 아니라 민족사의 의인들에 대한 조형물을 세워, 명실상부한 민족의 역사공원으로 조성해야 한다.’고 청원하고 있다. 종교단체에 시민단체가 가세하여 연합으로 서소문 공원 성역화가 천주교 순교성지화로 편향된 것을 바로 잡을 것을 요청하고 나선 것이다.

서소문공원은 조선왕조 5백년 간 사형집행지로서, 이곳에서 개혁파 허균과 홍경래난의 주동자,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의 주도자들이 처형되었고, 동학혁명 지도자인 김개남이 효수되었으며, 동학 2세 교조인 해월 최시형이 순교 직전 인근의 서소문 감옥에서 고초를 겪고 재판을 받았다. 서소문 형무소는 일제 들어서 105인 사건을 시작으로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수난을 당했던 곳이다. 서소문 공원은 천주교가 조선에 들어오기 이전부터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천주교도 박해를 받아 백여명이 순교한 곳이기도 하다. 또한 공원 옆의 서대문 형무소는 해방 이후에도 민주화 운동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고문과 고초를 겪은 곳이다.

 

안중근의사는 천주교 신자로 하얼삔 역에서 이또오 히로부미를 척결함으로서 조선의 독립을 원하는 민족의 의지를 만방에 떨치었다. 게다가 안중근 의사는 아들이 천주교 사제가 되기를 원하기까지 하였는데, 천주교는 그런 안중근 의사를 의거를 빌미로 파문했다. 그런 천주교가 몇 년 전 염수정 추기경이 주축이 되어 안중근 의사의 유묵을 천주교 기념물로 고가에 구입하여, 세간에 염치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 바가 있다.

종교는 그 어느 분야보다 진리의 수호자로 세간의 등불과 빛, 삶의 지표로 자처해왔다. 천주교가 일제치하에서는 조선에 진입한 신생 종교로서 친일행위 부역행위를 일삼은 수도자가 있었다 하더라도, 해방 후 민주화 운동 국면에서 정의 구현 사제단 등 천주교의 역할이 적지 않았던 만큼 그 공로를 인정해 줄 수 있다. 이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도대체 무엇이 두려워서 조선 오백년간 개혁과 안민(安民), 구국의 독립운동가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땅, 민주화 운동 등 민족사의 마디가 서린 곳을 200년 된 천주교만의 역사로 덮고, 그 위에 천주교만의 역사를 빛나게 하겠다는 것인지상생은 종교 비즈니스 앞에 내세운 구호일 뿐인지.

최근 자승 총무원장 체제하 대한불교조계종의 적폐청산은 시민 사회 원로들이 나서고, 서소문역사공원 바로 세우기는 범국민대책위가 나섰다. 그간 종교 문제는 종교내부의 문제로 여기고 종교 외부의 인사들은 웬만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있었다. 종교의 힘으로 자체 정화가 가능하다는 공감대가 있어서 일 것이다. 이제는 종교들의 잘못을 일반 시민의 상식으로 바로 잡아야 할 상황까지 온 것이다.

지도자의 덕목은 그 집단의 성격과 직결된다. 천주교의 민주화운동에는 정의와 국민을 보호하려는 김수환 추기경의 소신이 있었다. 염치를 잃은 성직자들에게 김수환 추기경의 묘비명을 전한다.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야훼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하여 국가도 종교도 있는 것이지, 국가 지도자와 종교 지도자 그 부속물 들을 위하여 국민이, 신도가 있는 것이 아니다.

 lampeer(20170804)